지난 6월부터 약 두 달간, 나는 소위 '갓생'이란 걸 살아 보려고 했다.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요일마다 정해진 주제에 대해 공부하거나 관련 책을 읽었다.
출근 후에는 일에 몰두했고, 가능한 한 매일 1~2시간 정도는 더 추가 근무를 하면서 성과를 내기 위해 애썼다.
6월 한 달 동안 칼퇴한 날은 딱 이틀에 불과했고, 7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말에는 더 바빴다.
토요일 오전마다 글 쓰기 모임을 열었고, 오후에는 재테크 관련 공부와 강의를 들었다.
일요일 오전에는 외국어 학원을 다녔고, 오후부터는 AI 분야 공부와 스터디 모임이 있었다.
물론 나는 이러한 패턴이 지속 가능하기를 바랐으므로, 열심히 휴식하거나 체력을 관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매일 7시간씩 충분히 잠을 잤고, 주 3회 이상 유산소 및 근력 운동을 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지인들을 만나 맛있는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말 오후에도 조금 시간을 내서 취미 활동을 하거나,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지속하면서도 속으로는 끝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체력은 남는데, 어딘가 정신적으로 점점 지치는 것 같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내 안에 무엇이 고갈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그저, 이 정도로 매일 같이 시간을 쪼개서 여러 가지를 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여겼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하면 될 일이라고.
하지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 안의 그 무언가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이 내면을 지배할 때쯤, 무기력이 찾아왔다.
무엇이 고갈되고 있었을까?
심리학 전문가들은 무기력이 단순히 게으른 게 아니라, 몸이 쉬어야 함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했다.
그러나 그대로 납득할 수 없었다.
그저 휴식이 부족했을 거라고 단정하기에는, 정작 나 스스로는 충분히 쉬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뭔지 모르겠지만, 분명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게 틀림 없었다.
때마침 코로나까지 걸리면서 내 무기력은 정점에 달했고, 8월 한 달을 거의 통째로 그냥 흘려보냈다. 무기력한 상태가 길어지자 우울감까지 찾아올 것 같았다.
그때 우연히 『원씽』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직관적인 제목대로, 저자는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즉 원씽을 찾아 집중하고 파고들라고 주장한다.
'멀티태스킹'이라는 단어는 사실 컴퓨터가 처음 상용화될 때 그 장점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단어일 뿐이며,
사람은 본질적으로 멀티태스킹을 잘할 수 없고, 단지 주의력을 분산시켜서 한 번에 여러 가지 일(task)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면서 모든 걸 잘 처리하는 '척' 할 뿐이라고 말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바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두 달 동안 계속 가지고 있던 불안 중 하나가 바로, 너무 다양한 것들을 하고 있어서 더 에너지 소모가 큰 것 같다는 가설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한 가지에만 몰입했다면 똑같은 시간을 들였어도 이렇게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를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원씽 자체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것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의지력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의지력이란 무엇일까?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심리학자 로이 보마이스터(Roy Baumeister) 교수는 『의지력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사람의 의지력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결과들에 대해 소개했다.
핵심은 정신적인 의지력에도 마치 체력과 같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 의지력이란 게 뭐길래?
의지력에 대한 뚜렷하고 일관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생각보다도 훨씬 까다로운 일이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 의지력이 필요한지를 통해 그 범주에 대해 이해해볼 수 있다.
첫째, 생각의 조절
우리의 뇌는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만들어 낸다.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생각들을 통제하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매 순간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극히 일상적인 일에서조차 매번 의지력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특히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혹은 후회스러운 일일수록 반복적으로 떠오르는데, 이러한 생각들에 저항할 때에도 의지력이 사용된다.
둘째, 감정 조절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감정 노동'이라는 키워드가 대유행이었다.
노동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괜찮은 척, 힘들거나 괴롭지 않은 척, 항상 웃는 얼굴로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정신력과 체력, 무엇보다 의지력을 필요로 한다.
셋째, 충동 조절
의지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가장 흔히 함께 연상되는 부분이다.
말하자면 술이나 담배, 달달한 디저트, 쇼핑, 수면 등과 같은 욕구나 유혹에 저항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수행 조절
현재의 일에 에너지를 집중해 속도와 정확성을 기하고, 시간 관리를 잘하며, 그만두고 싶을 때도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앞서 얘기한 의지력의 범주들은 모두 제목에 공통된 단어를 가지고 있다.
'조절'.
그러니까 결국 의지력이란 내 생각과 느낌, 행동을 제어하는 능력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의지력을 소비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거스르는 과정이다. 나는 이것이 의지력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가진 의지력을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나 정량적 기준은 없다. 수시로 내게 남은 의지력이 얼마인지 확인하고, 이를 계획에 반영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의지력을 관리하는 요령을 익히고 장기간에 걸쳐 훈련하면,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또한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생각하고 정리한 의지력 관리 요령은 다음과 같다. (중요한 순서대로)
1. 균형 잡힌 양질의 영양소를 제때 규칙적으로 섭취한다.
이게 웬 뻔한 말인가 싶겠지만,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 몸의 모든 에너지는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의지력도 마찬가지다.
어딘가 오래 집중하고 나면 '당이 떨어졌다'라고 느끼곤 한다.
이는 사람이 생각을 하기 위해 혈관 속에 많은 양의 포도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도당은 뇌 속에 직접 유입되지는 않지만, 뇌 세포가 신호를 보내는 데 필요한 신경 전달 물질로 전환된다.
그리고 신경 전달 물질이 없으면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포도당 부하율, 즉 신체가 음식물을 에너지로 변환하지 못할 경우 자기 절제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즉 포도당 없이는 의지력도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포도당은 이미 고갈된 의지력도 마법처럼 회복시켜준다.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자기 절제를 많이 필요로 할수록 단것에 대한 갈망이 크게 나타난다. 그것도 유독 단것에 대해서만 욕구가 커지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그저 자기 절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단것이 당기게 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언제든 단것을 먹어도 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은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단것을 계속 섭취했다가는 혈중 포도당 농도가 높아지고 포도당 부하율은 점차 떨어져 당뇨에 걸릴 수 있다. 더 이상 포도당을 의지력의 효과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때문에 포도당 같은 단당류 형태보다는 다당류 형태의 복합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을 권장한다.
GI 지수(Glycemic Index), 즉 음식별 혈당 지수를 참고해서 식단을 구성하는 게 좋다.
다행히 고단백 음식물이나 다른 영양소가 든 음식들도 포도당에 비해 속도는 느리지만 의지력 회복에 도움을 준다.
따라서 양질의 탄수화물과 적절한 단백질 등을 적절한 타이밍에 거르지 않고 섭취해야 한다.
그래야 단것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꾸준히 의지력을 회복해가면서 더 중요한 일들에 집중할 수 있다.
2. 의지력이 가장 강한 때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한다.
의지력에는 재미있는 특성들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모든 종류의 과제를 수행할 때 같은 양의 의지력이 소모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518 × 27을 계산할 때와 오늘 점심에 뭘 먹을지를 고민할 때 소모되는 의지력이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의지력이 충분한 상태이거나, 휴식과 수면, 음식물 섭취 등을 통해 회복한 이후에는 곧장 우선순위 맨 위에 있는 일부터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간단하고 쉬운 작업들이라고 해서 그것들을 먼저 해치우고 나면, 정작 중요한 일을 할 의지력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3. 선택의 피로를 최소화한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주언규(前 유튜버 채널 '신사임당' 운영자).
이 세 사람은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으로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매일 주어지는 수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결정을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큰 피로감을 가져오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날씨와 기분, 상황에 따라 매번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거울 앞에서 고민하는 과정을 하루 중에서 과감히 생략한 것이다.
이처럼 선택과 결정의 피곤함을 줄이고, 안정적인 생활 루틴을 만드는 것은 보다 중요한 일에 의지력을 사용하기 위한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돌아보면서 일상적인 선택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내 경우에는 매일 뭘 먹을지와 뭘 입을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길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대부분 정해진 것을 먹고, 정해진 옷을 입는다.
평일 아침에는 견과류와 과일을, 혹시 더 배가 고픈 날에는 샌드위치를 사 먹는다.
점심과 저녁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토요일 아침에는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재료도 항상 정해져 있다.
통밀 식빵과 잘게 썬 양배추, 계란과 체다 치즈, 소스는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식물성 마요네즈, 토마토케첩을 넣는다.
점심과 저녁은 보통 통곡물로 밥을 지어 한식을 먹는다.
일요일 아침 역시 견과류와 과일을 먹고, 점심은 외식, 저녁은 간단한 한식으로 채운다.
한식 메뉴는 가능하면 한 번에 2~3끼 양을 요리해서 주말에 나눠 먹는다.
또 몇 년 전부터 계절마다 7~8가지 옷을 매일 돌려 입는다. 더 많은 옷을 가지고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굳이 선택지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융통성 있게 그날에 맞는 옷을 선택할 수 있고, 한 주의 후반부로 갈수록 선택지가 줄어들어서 훨씬 편하다.
7~8가지 중 선택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이유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미리 일기예보와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을 골라 그에 맞는 옷을 정해두면, 나머지 중에서 선택하는 것은 아주 쉽다.
덕분에 아침마다 옷을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분 남짓에 불과하다.
또한 쇼핑에 대한 관심이 줄고 소비도 훨씬 줄었다.
한 가지 더 추천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일을 자동화하고, 간소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과금이나 관리비를 납부하는 일은 반드시 자동 이체 설정을 해둔다.
만약 요리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외식과 배달을 이용해도 좋다. 설거지가 너무 싫다면 저렴한 식기 세척기를 마련해도 된다.
4. 통제하기보다 습관을 활용한다.
의지력을 가장 자주 소모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욕구나 유혹에 저항하는 일이다.
다이어트만 하려고 하면 식욕이 더 왕성해지는 것 같고,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면 꼭 더 피곤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제력이 필요한 상황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의지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의지력을 사용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
습관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환경 설정과 지속 기간.
예를 들어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들인다고 하자.
그렇다면 스스로가 매일 자발적으로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뛰쳐나가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하루 이틀은 성공할 수 있지만, 얼마 못 가 의지력은 그것대로 소모하면서 스스로 이런 간단한 것도 해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괴감만 늘어갈 것이다.
대신에 구체적인 운동 시간과 장소, 이동 동선을 하나의 시스템처럼 구축해야 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내가 도달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즉 시스템이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나를 이끌도록 말이다.
습관이 자리 잡는 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이미 21일, 또는 66일이라는 숫자에 익숙해져 있지만 여기에는 큰 오류가 있다.
우선 21일이라고 밝혀진 기간에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연구나 실험 사례가 없다.
또 66일이라는 결과는 평균값이며, 실제 해당 실험에서 습관을 형성하는 데 소요된 최장 기간은 254일이었다.
이는 평균의 약 4배에 달한다.
결국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고, 또 습관의 종류나 난이도에 따른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특정 기간을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그저 매일 조금씩 그 모습에 가까워지는 스스로를 관찰하는 것이 좋다.
오히려 66일을 목표로 했다가 중간에 하루 이틀 지키지 못하면, 좌절하면서 아예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5. 한 번에 한 가지 프로젝트에 집중한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제어하고 통제하면 그만큼 의지력을 배로 사용하게 된다. 고갈되는 시점이 훨씬 빨리 찾아오는 것이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려워진다.
특히 여러 프로젝트의 목표나 결과, 이익 등이 서로 상충될 경우에는 그 전부가 실패할 가능성은 100%이다.
예를 들어 금연과 동시에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하자.
의지력 소모로 인해 강력해진 당 충전 욕구는 금단 증상과 쌍벽을 이뤄서 전례 없는 시너지를 낼 것이다.
덕분에 다이어트라는 목표는 빠르게 잊히고, 이 과정에서 비롯된 좌절감은 '역시 난 할 수 없을 거야'하는 믿음을 굳건하게 만든다.
추천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프로젝트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선순위에 따라 한 번에 하나의 메인 프로젝트에 집중하되, 나머지는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서 하나씩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렇게 매일 자기 조절 훈련을 하다 보면, 실제로 의지력이 점점 강해질 뿐만 아니라, 그것이 고갈되는 속도도 느려진다.
단 한 가지 훈련으로도 의지력을 포함해 전혀 다른 영역들에 있는 능력들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역시 한 가지 훈련에 집중했을 때 가장 효과가 좋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애초에 여러 훈련을 시도한다고 해도 그것이 지속되기 어려울 테니까)
다만 주의할 점은 이 훈련이 '감정 조절'일 경우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훈련을 한다는 것은 매일 체력이나 정신력이 향상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실험 결과에 따르면 감정 조절의 경우에는 이들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의지력을 강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훈련 중 하나는 매일 체력을 단련하는 것이다.
반드시 격하고 강도 높은 운동일 필요는 없다.
아주 쉽고 간단한 것이라도 신체 능력을 키우면서 매일 욕구를 참는 연습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 의지력이 향상되고 훨씬 더 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좋은 예습이 될 수 있다.
6. 나답게 사는 법을 익힌다.
앞서 의지력은 자아를 조절할 때 소모된다고 했다.
다시 말해 나를 인정하고 그에 맞춰 살면, 애초에 의지력이 부족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더 성장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방향과 방법이 나다운 것이라면, 노력의 과정은 훨씬 덜 괴롭고 덜 힘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하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지만, 나에게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신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버티는 것은 내게 고역이다.
덕분에 대학생 시절에도 클럽이나 나이트에 가본 적이 없다. 아무리 빨라도 밤 11시는 되어야 입장을 할 텐데, 그 시간이면 이미 나는 잠을 자거나, 혹은 잠을 자기 위해 집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의지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주 좋은 자기 개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쯤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자아를 통제하고 조절하려는 매일의 노력이 자신의 발전에 앞서 다른 사람의 시선, 혹은 사회적 인정 때문은 아닌지 말이다.
아무리 미라클 모닝이 좋다고 해도, 모든 올빼미과 사람들이 자괴감을 느끼면서까지 따라야 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니까, 반드시 부자가 되어야만 인생이 성공한 걸까?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안에 사는 나는 어떠한가?
내가 가장 선호하고, 가장 추구하고, 또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모습과 환경은 무엇인가?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수록, 더욱 나다운 것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를 관찰해야 한다.
의지력의 고갈은 곧 자아 고갈을 뜻하는데, 이는 이중 타격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욕구에 대한 저항 능력이 약해지는 순간, 금지된 것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한 범위에서는 항상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편한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자주 만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도 미움받을 용기를 갖고 나를 내보여야 한다.
또 나에게 맞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이를 찾았다면 망설이지 말고 다가가자.
이렇게 보다 적극적으로 '나'로 사는 태도가 우리를 더 큰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