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올해 초부터 매일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같은 산을 자주 다니다 보니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쓰레기였다.
특히 같은 쓰레기가 다음 날에도 그 자리에 있는 걸 보면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산에는 환경미화원이 없으니까, 누군가 선의로 치우지 않으면 계속 방치되다가 결국 낙엽에, 땅에 묻혀 썩지도 않고 수십 년을 간다.
어차피 가는 산행에 봉투 하나 더 챙기면 되는 일이니까,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쓰레기를 하나 둘 주워오기 시작한 것도 벌써 반년이 흘렀다.
사실 학창시절 꽤 오랫동안 학교 앞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했었는데,
당시에는 환경 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지 않아서 보는 사람마다 '너는 왜 그리 유난이냐'는 식의 눈칫밥을 은근히 많이 먹었다.
지금은 오히려 '클린하이킹'이라는 단어도 생겨날 만큼 환경을 생각하는 행동들이 존중받고, 오히려 힙하다고 여겨지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주로 버려지는 쓰레기의 종류이다.
10년 전만 해도 단연코 가장 많은 쓰레기는 담배 꽁초였는데, 요즘은 대부분이 플라스틱 아니면 비닐(사실 이것도 플라스틱)이다.
아무래도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더구나 팬데믹으로 인해 배달 문화가 주류를 이루면서 필연적으로 맞이한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1인당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세계 2위에 해당한다고 하니,
아무리 우리가 배달의 민족임이 자랑스럽다고 해도 나부터 변화를 위한 쇄신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깊게 반성해본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81109081436511
혹시 클린하이킹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몇 가지 꿀팁을 전하고 싶다.
첫째, 가능하면 쓰레기를 버릴 봉투에 바로 담는 게 편하다.
예를 들어, 앞서 말했듯이 내가 줍는 쓰레기의 대부분은 플라스틱이나 비닐에 해당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투명 비닐봉지에 플라스틱이나 비닐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 분리수거용 투명 비닐봉투를 챙겨 가서 쓰레기를 줍고, 집에 돌아와 분리한 후 배출하는 식으로 한다.
만약 아파트 등에 거주하면서 별도 봉투 없이 쓰레기만 배출하는 식이라면, 굳이 일회용이 아닌 방수 재질의 가방을 이용하면 된다.
단, 오염 물질이 묻고 냄새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세탁이 편리하고 가벼운 것을 추천한다.
둘째, 장갑 또는 집게는 필수다. 둘 중에서는 집게를, 가능하면 둘 다 가져갈 것을 추천한다.
쓰레기를 맨손으로 줍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특히 휴지 같은 것들은 무엇을 닦았는지 알 수 없고, 대부분이 축축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찝찝함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장갑을 끼고 나서 집게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제 겨울이라 손이 시려울 것을 대비한 것도 있지만, 가끔 집게로는 줍기 어려운 것들이 꼭 한 번씩 나오기 때문이다.
셋째, 쓰레기를 주울 구간을 정해두면 좋다.
이건 편리함 때문이라기보다 어느 정도 본인의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말에 가깝다.
내 경우에는 산에 올라갈 때에는 쓰레기를 줍지 않고, 오직 내려올 때에만 줍는다.
올라가는 길에는 쓰레기의 대략적인 위치만 눈으로 확인하고, 호흡과 운동에만 집중했다가
내려오는 길에 미리 봐뒀던 쓰레기들을 한 번에 줍는다.
이렇게 하면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무엇보다 올라가는 길에 자꾸 멈춰 서서 혹시라도 뒤에 따라오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다.
또 반드시 산 입구까지만 쓰레기를 줍고, 일반 도로가 시작되면 줍지 않는다.
사실 쓰레기를 줍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앞에 있는 것들을 계속 줍게 되면서 끝을 맺기가 애매해지는데, 그러다가는 집에 가는 길까지 온 동네 쓰레기를 다 주워 모으게 될 수도 있다.
산에서는 모든 쓰레기를 평등하게, 너무 위험하지만 않으면 가능한 모두 줍기 위해 노력하지만 일반 도로에서는 결코 그럴 필요가 없다.
넷째, 산에서 주워 온 쓰레기는 절대 집으로 들이지 말자.
산에 버려졌던 쓰레기는 악취도 심하고, 세균을 포함한 각종 미생물은 물론, 특히 벌레가 많다.
때문에 쓰레기를 주워 오고 나서는 가능한 바로 분리 수거 후 배출해서 집 안에 두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벌레들을 집에서 조우하고, 내친김에 동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원래 쓰레기를 줍고 나서 사진을 찍지 않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번 찍어 봤다.
혹시 산에서 쓰레기를 버렸던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조금이라도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다음에 조심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사실 처음에는 도대체 산에 누가 쓰레기를 버리는 걸까, 혀를 끌끌 차고 욕설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매일 가서 줍는데도 신기하게 매일 또 쓰레기가 있는 걸 보면,
분명 이건 버리는 사람과 줍는 사람, 그 중 누가 더 부지런한가의 싸움이겠거니...
정신 건강을 위해 이제는 조금 초연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매번 쓰레기를 주울 때마다 더 드는 생각은 역시 정말 중요한 건 애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큰 가방에 텀블러를 챙기고, 배달 음식에 플라스틱 수저는 빼는 것처럼,
나부터도 갈 길은 멀지만 작은 것부터 하나씩 더 실천해보려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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